영화 리뷰 - 사랑은 낙엽을 타고
눈이 거칠게 내리고 있는 오늘, 왠지 모를 두통으로 인해 아침을 타이레놀로 시작하였다. 간신히 부여잡고 있던 정신이 쉬는 틈을 타 본능은 어느새 나를 코엑스 메가박스 앞에 데려다 놓았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
크리스마스에 개봉하는 그 흔한 로멘틱 코미디 영화일까 싶어 바로 예매를 완료했다. 상영관은 수용 인원이 100명은 커녕 50명도 될까 말까하는 아담한 공간이었다.
한껏 울고 웃을 준비를 마친 뒤 비장한 마음으로 상영관을 입장했던 나는 미처 다 마시지 못한 제로콜라와 같은 기분으로 상영관을 나섰다.
“아, 이것이 핀란드 식 유머인가?”
영화는 기대와 달리 전혀 서정적이지 않았다. 남자 주인공은 공사판을 전전하며 술에 의지해 삶을 산다. 여자 주인공은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실직과 구직을 반복한다. 그들은 사회와 단절된 노동자로서 살아가고 있지만 남자에겐 술이, 여자에겐 라디오 뉴스가 유일한 삶의 낙이었다.
두 주인공은 그들에게 닥친 비극들을 당연하다는 듯 무덤덤하게 넘겨가며 건조하게 살아간다. 영화 속에서는 그들이 가라오케에서 처음 만나게된 순간부터 끝까지 그들이 처해진 상황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오직 그들이 느끼고 있는 감정만을 표현할 뿐이었다. 주인공들 스스로, 직설적이게.
영화는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세계가 아직 아날로그임을 끊임없이 비춰준다. 연락할 수단이 없어 함께 갔던 영화관에서 하염없이 여자를 기다리는 남자, 일을 구하기 위해 인터넷 카페를 찾아 나선 여자. 그러나 여자의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아이러니하게도 작중 시점이 현대임을 강조하며 미묘한 괴리감을 조성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여자는 라디오 뉴스 채널을 돌림으로써, 남자는 술을 끊음으로써 그들 각자 사랑의 시작을 알렸던 부분이었다. 이때의 대사를 끝으로 글을 마무리 지어본다.
“술을 완전히 끊었어요.”
“계기가 뭐에요?”
“당신이요.”